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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일상적인 이야기
이름: 박제의 * http://www.afreeca.co.kr/dudwo1026


등록일: 2020-05-06 13:12 (27.124.205..***)
조회수: 946 / 추천수: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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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일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몸을 늘어뜨린 채 얼굴을 바닥에 떨구고 흐느끼고 있었다. 그가 입고 있던 마이클 조던이 새겨진 티셔츠가 젖어 들고 있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잘잘못을 추궁하던 박무용선생님도 어느 순간부터 현일의 등을 토닥여주고 있었다. 얼마나 서럽게 울부짖었으면 교무실에 앉아 있던 모든 선생님이 기웃거리며 현일을 쏘아보고 있었다. 결국, 박무용선생님은 현일에게 휴지 두루마리를 건네며 달랬다. 웃는 얼굴로 현일이 교무실을 빠져나가는 모습을 보면서 크게 한숨을 쉬었다. 선생님은 바닥에 떨어진 휴지 뭉치를 자리에 비치되어 있던 쓰레기통에 던져 넣었다. 그리곤 자기 자리에 앉아 멀뚱히 그 옆에서 모든 것을 지켜보던 나에게 내 이름을 크게 호령했다.
  선생님은 집게손가락으로 가까이 오라는 듯이 시늉을 하고 있었다. 선생님은 고개를 좌우로 흔들면서 지긋이 날 쳐다봤다. 물론 무슨 이유로 나를 쳐다보고 있는지는 알 수 있었다. 결국, 용돈 주머니 도난사건의 진범이 누구인지 알고 있었음에도 조용히 이 사건이 흐지부지되었다. 선생님과의 아주 잠깐의 이야기 이후 교실로 돌아왔을 때, 내 책상은 엎어져 있었다. 바로 현일 쪽으로 눈길이 갔지만, 따로 내색하지 않았다. 빨개진 귀와는 다르게 친구들 사이에서 함박웃음을 짓고 있었다. 책상을 원래대로 세우고 흩어졌던 책들을 모두 하나하나 주웠다. 그러면서 한쪽으론 현일의 표정 변화를 지켜보는 게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이었다.
  불행히도 현일은 누워만 있을 수밖에 없었다. 사실상 그는 이제 이질감보다는 친근함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지금 이 순간, 미래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알고자 할 때면 현일이는 언제나 노트북을 이용한 검색과 휴대전화를 이용했다. 잡다한 활용 방법으로 높은 효율을 얻으려 자기 자신과 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아직 자기 자신이 살아있음을 증명이라도 하려는 듯이 온갖 뉴스에 댓글을 달아 옹호와 비판 할 것 없이 자기가 생각하는 모든 이야기를 풀어놓고 있었다. 제일 인기가 많았던 이야기는 '나는 대기업에서 노조파업 당시 노동자를 돕다가 쫓겨난 몸이라고!'라고 적으면서 노조파업 당시 있을 법한 이야기를 주절주절 적어뒀던 것이 뉴스에 보도됐을 때였다. 웃기지도 않을 농담이었다. 언제나 얼굴 모르는 그 사람들과 씨름을 하지만 그것으로 자기 자신이 한층 더 유명세를 띄고 그에게 또 다른 기회가 주어질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현일에게는 정직한 일자리도 없었고 신뢰를 얻을 친구조차도 없어 보였다.그런데도 자신의 결백과 필요성을 증명하겠다는 의지만큼은 남달랐다. 하지만 남달라도 너무 남달랐다.
  손가락으로부터 자판 소리가 울려 퍼질 때마다 컴퓨터에는 항상 그의 이야기가 이 열 횡대로 규칙적으로 나열돼 있었다. 삼포 세대란 단어를 귀에 들어가며 살아온 그는 애써 외면하며 손가락으로 수많은 이야기를 토해냈다. 고등학교를 수시로 찾아가서 생활기록부를 가져오는 것이 일상이었던 과거에 비하면 매우 초라하고 우스꽝스러운 모습이었다. 일정한 수입도 없으며 이유조차 없었다. 결국, 현일이는 고등학교에 가는 것을 멈췄다.
  그러면서 현일은 집에서 붙어살기로 마음을 먹었다. 방구석에서 자기가 누울 빈자리만 찾고 거기서 새로운 직업을 찾아가기 위해 손가락을 이리저리 저어가며 자신을 향해 격려와 일어설 수 있다는 희망을 여러 번 다졌다. 스스로가 겪는 일이 모두 거짓이었으면 하는 꿈을 머릿속에서 확신하는 것이 현일이 당장 할 수 있었다. 남들이 보기에도 한심해 보였으리라 짐작한 것인지 친인척들과 만나는 명절이면 언제나 현일은 밖으로 나갔다. 누구누구네 아들이 커다란 회사에 취직해서 선물을 들고 오거나 웃는 낯으로 힘껏 이야기를 시작하고 있노라면, 그는 괜히 할 말이 없어서 방구석에 박히거나 밖으로 나가는 버릇이 생겼다. 하지만 그런 날이면 어느 곳을 걸어야 할지 몰라서 언제나 항상 뒷주머니에 있는 텅 빈 지갑을 꺼내 확인하면서 길을 걸었다. 명절이 되면 꼬박꼬박 용돈을 받던 시기가 떠오르면 살짝 친인척들이 원망스러웠는지 언제나 하나 남은 아는 사람에게라도 전화를 걸어서 그렇게 하소연을 했다. 현일은 결국 이년 내내 불빛 꺼진 가로등처럼 집 근처 모퉁이에서 친인척들이 모두 돌아갈 때까지 서 있었다.

  현일은 미끈거리는 머리카락을 만져보다가 거울을 찾아 비췄다. 머리에 기름이 번들거리고 있었다. 머리에 달라붙은 기름때가 보기 싫었는지 화장실로 들어가 머리에 물과 샴푸를 바르며 시간을 보내다가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힘없이 잔주름만 늘어가는 어머니의 한숨이 들렸다. 현일은 살짝 머리를 내밀어 현관문을 봤다. 푹 빠진 어깨로 문을 여는 아버지의 모습이 보였다. 아버지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문을 닫아버렸다. 집 안은 물소리만 가득했다. 현일은 머리를 가볍게 씻어내고 머리를 말리기 위해 도로 자신의 방으로 돌아갔다.

  내가 두 번째로 현일을 봤을 때는 대학생 때였다. 현일은 대학교에서 나름 주도적이고 열성적인 친구로 알려져 있었다. 군대를 다녀오는 것이 마냥 두려웠지만, 운이 좋은 것인지 현일은 공익으로 빠져 나왔었다. 공부도 열심히 하려고 전공과목 책들을 물려 받거나 없으면 복사를 해서 마음껏 필기를 하며 학점을 올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자신감으로 똘똘 뭉친 어느 술자리에선 자기가 가장 먼저 취직할 거라며 웃는 낯으로 너스레를 떨기도 했다. 그는 학교를 졸업하기 전 딱 한 번, 아르바이트 자리를 찾았었다. 사회생활의 첫걸음을 쉽게 접할 수 있는 것으로 하겠다며 살짝 만만하다는 듯이 시작했다. 현일이 편의점에서 첫날 근무를 했을 때였다. 술 취한 손님이 찾아와서 담배를 달라고 했는데, 그는 담배를 피워 본 적이 없었기에 담배 이름의 줄임말을 단번에 이해하지 못하고 어느 것을 찾아야 하는지 우왕좌왕했다. 그러자 술기운에 손님이 욕을 하며 현일이를 몰아세웠다. 욕까지 들었지만, 자신이 잘못해서 벌어진 일이라는 것이 그의 마음이었다.
“죄송합니다, 손님. 제가 처음이라서 잘 몰라서요.”
“미안하면 다야? 자네 때문에 마지막 차를 놓쳤잖아.”
“죄송합니다. 제가 오늘 처음 일하는 거라서 돈이 하나도 없습니다. 무언가를 사드리고 싶어도…”
“아니 그래서, 맨입으로 보내겠다고? 이렇게 불친절해야… 사장 번호 불러.”
“처음에는 누구나 힘든 걸요. 조금만 배려해주시면 안 될까요?”
“뭐? 젊을 때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데 무슨 말대꾸야 그게… 사장 번호 불러 빨리.”
현일이는 참다못해 손님에게 욕을 쏟아부었다. 결국, 손님은 경찰을 부르고 편의점의 사장뿐만 아니라 현일의 부모님까지 대동해서야 일이 마무리되었다. 현일은 그 날로 편의점에서 해고당했다. 현일은 푸념을 내뱉으며 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어떤 일도 하지 않았다.
학교 졸업 후 현일은 직장을 구하겠다면서 공단 거리를 돌아다니며 이력서를 뿌리고 다녔다. 아르바이트 사건이 지나간 후, 현일은 자칫 실수 하나에 손가락이 멀리 떨어져 나가 꿈틀거리거나 팔뚝에 상처 한둘은 기본으로 날 수 있는 일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자기와 다른 많은 사람은 그런 일에 목숨을 걸고 있는 것도 알고 있었다. 비록 어려운 일이기는 하지만 그만큼의 돈을 월급으로 주기 때문에 하는 사람들이 있음을 알고 있었다. 비록 어려운 일이기는 하지만 그만큼의 돈을 월급으로 주기 때문에 하는 사람들이 있음을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정신을 제대로 차려야만 하는 일이란 것도 알기에 아르바이트를 했었던 날과 같은 실수가 없기를 빌며 딴에는 많은 공부를 했다. 위험한 일이라도 맡겨주면 뭐든 다 하겠다며 자신 있게 말했지만, 작은 실수를 하나 저지르고 다시 대차게 말아먹었다. 칼륨에 염화나트륨을 섞어야 하는 것인데 실수로 염화나트륨에 칼륨을 섞고 만 것이었다. 어떻게 조합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것으로 변질될 수 있다는 것을 몰랐던 그는 그것을 끝으로 안부 연락이 오는 그의 대학 친구들의 연락을 모두 무시하면서 그저 자취방 구석에 있을 뿐이었다.

  현일은 부모님을 불러 세우고는 서울로 올라가야만 한다고 말했다. 이때까지 아무것도 하지 않던 그의 말을 들은 부모님들은 헛웃음을 지었다. 현일에게 왜 서울로 가야만 하는지에 관해 물어봤지만 현일은 묵묵부답으로 그저 올라가야만 한다고 억지를 부렸다. 대학을 서울에서 나온 것도 아니었고 사는 곳도 서울이 아니었다. 현일이 서울로 간다는 말은 부모님에게는 헛소리인 것이 분명했다. 단지 서울에 가고 싶다며 투덜대는 현일을 보며 그의 부모님들은 핏대를 세우기 시작했다. 현일은 결국 한마디 내뱉었다.
  “사람이 넘치는 거리고 아마 나랑 비슷한 사람들이 많을 거야. 그렇다면 자동적으로 그런 곳엔 반드시 일자리가 있을거야.”
몇일 밤을 그렇게 지세웠다. 현일은 잠도 한숨도 안 자고 부모님방 앞에서 가만히 있었다. 결국 현일은 성공적으로 부모님들께 허락을 받아내고 말았다. 현일은 태어나면서 손에 꼽을 정도로 안 했던 큰 절을 부모님에게 올렸다. 바로 상경 준비를 마치고 집 대문을 나서려할 때 현일의 부모님이 현일을 잡아세워 돈 봉투를 쥐여주었다. 현일은 조심스럽게 돈 봉투를 만지며 눈물을 살짝 머금었다.
“너무 걱정하지 말아 주세요.”
현일이 부모님에게 해줄 수 있는 말은 그것이 전부였다. 문밖을 나선 후에 아쉬움이 남았는지 대문을 자꾸만 바라보게 되었다. 돌아오지 못할 여행을 떠나는 듯이 계속해서 한 걸음을 걸을 때마다 뒤를 돌아봤다. 마침내 집의 문이 완전히 사라졌을 때쯤에야 그는 거리낌 없이 걸어갈 수 있었다.

  빌딩이 가로수처럼 늘어선 거리에서 유독 높게 뻗은 커다란 빌딩에 찾아온 그는 시골과는 다른 서울의 공기를 깊게 마시고 뱉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는데 돈이 드는 줄 몰랐었던 현일은 게슴츠레한 눈초리로 직원을 살폈지만, 자신의 옆에 있던 사람들도 직원에게 돈을 주는 것을 보고 지갑에 손을 댔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가는 와중에 보이는 모든 것들이 한없이 작아 보였다. 현일은 옥상에 도착할 때쯤에는 티가 나지 않게 엘리베이터 옆에 달린 손잡이를 꽉 쥐었다. 옥상에 도착해 하늘을 바라보며 그는 양사언의 시조를 읊조렸다.
“태산이 높다 하되 하늘 아래 뫼로다. 오르고 또 올라 못 오를 리 없건만. 사람이 제 아니 오르고, 뫼만 높다 하더라.”
옆에서 가족들과 함께 있던 흰머리 무성한 할아버지가 현일에게 살짝 들리게끔 속닥였다.
“뭔 개소리여.”

   현일은 거리를 걸을 때마다 집 대문을 나섰던 때처럼 한 걸음 걸을 때마다 뒤를 돌아보며 걸었다. 횡단보도 앞에 서서 아스팔트를 내려다봤다. 경적이 시끄러운 차들이 널려 있었고 배기가스가 검게 피어올랐다가 사라지고 있었다. 아스팔트라는 검은 도로 위에 덧붙여진 하얀 껍질들로 이루어진 길에는 항상 말소리와 발소리가 함께했다. 말소리 대신 휴대전화 소리가 울리기도 했다. 현일은 자신의 휴대전화를 꺼내 들었다. 현일은 자신이 가야 할 직업을 찾아야 했다. 자신과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넘치는 거리가 서울이라고 큰소리를 치고 왔으니 뭐라도 해야 했다. 하지만 미련이 있었는지 조용히 주변을 떠돌아다니기만 했다. 서울은 사람이 많았지만, 일자리가 따라가지 못하고 있음은 어디든 같았다. 부모님에게서 받았던 봉투에 들어있던 돈으로 구할 수 있었던 것은 서울의 작은 고시원뿐이었다.

  서울의 중심과는 먼 변두리에 있었다. 밥과 라면을 준다는 말에 솔깃해서 들어갔었다. 실제로 현일은 그 돈으로 들어갈 곳은 그곳이 유일했었다. 몸을 맡길 수 있는 침대와 책상만이 있는 고시원이었다. 창문조차 없었기에 신선한 공기를 마시려면 바깥으로 가야 하는 수고를 해야 했지만 다행히도 라면은 제대로 지급되었다. 다만 밥은 쌀밥뿐이었다. 하루 일찍 아르바이트를 구해야 했으나 좀처럼 찾을 수 없었다. 현일은 인터넷으로나마 일자리를 구할까 싶어 구인광고와 관련된 사이트를 들락날락했었다. 현일은 가진 자격증들을 머릿속으로 곰곰이 생각해보았지만, 쓴웃음만 지을 수밖에 없었다.
   현일은 고시원에 들어오고 나서 하루에 한 번 이상 부모님에게서 안부 전화나 문자메시지가 날아왔다. 서울에 상경했을 때만 해도 입이 귀에 걸릴 만큼 기뻤던 현일은 매일매일 열심히 하고 있다며 부모님에게 안심을 시키는 거짓말을 해댔다. 하지만 하루가 다르게 부모님의 이야기는 점점 길어지기 시작했고 현일은 점점 귀찮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결국, 현일은 부모님과 그의 친인척들의 연락처를 모두 차단했다. 매일매일 구인광고를 보면서 여러 회사나 아르바이트를 할 만한 곳을 찾아봤지만 언제나 돌아온 답은 없었다. 현일은 이 주일 정도 지나기 시작했을 때부터 바깥으로 나가지 않게 됐다. 그저 조용하고 아득하리만치 외로운 듯, 불행히 누운 그대로였다. 수염은 턱을 덥수룩하게 덮었고, 머리는 어깨까지 내려왔다. 발톱은 살짝만 부딪혀도 부러질 만큼 길기 시작했는데 유별나게 손톱만은 짧았다. 현일은 구인회사를 찾아봐야겠다고 생각하며 집에서 챙겨 온 노트북을 꺼내 인터넷을 켰다가 재미있는 동영상 하나를 틀었다. 현일은 입에서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지 않았다. 곧 옆방에서 자신의 방을 향해 두들겼다. 방이 좁아서 그런 것인지 맞은 편에 있는 다른 방에서도 벽을 두들기기 시작했다. 현일은 불현듯 웃음을 지웠다. 입을 손으로 가로막은 덕분이었다. 현일은 인터넷을 종료하고 조용히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다가 다시 입을 막았다. 주위를 살짝 곁눈질하듯이 쳐다봤다. 누군가 자신의 숨소리라도 들었다고 생각하는 듯이 그는 슬그머니 노트북을 덮었다. 팔을 뒤로 메고 달력에 시선이 갔다. 달력에는 ‘고시원 비용’이라는 말이 어렴풋이 달려 있었다. 두 주가 남아 있었다. 현일은 답답해지기 시작해서 슬리퍼를 신고 고시원 밖을 나왔다. 현일은 따로 일한 것도 없었는데 무슨 힘이 있고 무슨 배경이 있어 돈을 낼 수 있을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일자리 하나 얻겠다고 애를 썼던 시간이 비에 젖은 듯했다.
“내가 이렇게 인재인데, 왜 날 무시하는 건지 나도 모르겠다. 나도 옛날에는 제법 멋있었단 말이지. 누구보다 먼저 취직할 거라고 으스대면서 그랬었는데.”
  현일은 말하면서도 쓴웃음을 지었다. 세상 다 살았다는 눈빛으로 의지마저 잃은 듯이 쓸쓸하게 바닥에 굴러다니는 돌조각을 멀리 차버렸다. 현일은 문득 똑똑함으로 무장한 휴대전화를 매만졌다. 때마침 문자메시지가 한 통 날아왔다. 현일은 일전에 연락했던 구직 문자일 거라는 확신이 찼는지 급하게 휴대전화를 켰다. 하지만 별말 없이 연체된 요금을 내라는 고지서가 전형적인 인사말과 함께 보내져 있었다. 현일은 자기도 모르게 휴대폰을 냅다 땅에 던져버렸다. 실망감이 역력한 표정으로 얼굴을 들었다. 하지만 이내 땅에 떨어져 깜빡깜빡 불빛이 들어오다가 나가기를 반복하는 휴대전화를 들고 이리저리 살펴봤다.
  “나도 잘 알고 있다고 그런 건.”


  내가 현일을 세번째이자 마지막으로 봤을 때는 뭐 이 글을 읽는 분들도 어느정도 예상되는 곳이라 생각된다. 현일은 누워있었다. 불행하게도. 음질이 떨어지는 휴대전화의 목소리로 현일의 목소리를 들었을 때 솔직히 귀찮게만 느껴졌었다. 잘사는지 걱정을 일도 안하던 사람에게 연락이 왔으니 말이다. 악연이든 우연이든 얼굴은 보고 오자는 기분으로 현일의 고시원으로 갔다. 정확한 위치를 몰라서 고시원 이름만 수소문해서 겨우 찾아왔더니 고시원 주인은 냉랭하게 현일에게 전화해서 본인이 나오게끔 해달라고 명령했다. 따로 따질 생각도 없었기에 바로 전화를 했지만 꺼져있었다. 주인은 자신도 귀찮았는지 자기가 데려올 것처럼 뉘앙스를 취하다가 나에게 들어와도 된다는 승낙의 표시를 했다. 조용한 고시원 복도를 지나면서 벽에 옹기종기 모여 붙어 있는 용기와 희망을 불어넣어주는 주옥같은 명언들을 한번씩 훑어봤다. 고시원 끝자락에 자리 잡은 현일의 방 앞에서 조용하게 두 번, 손가락으로 문을 두들겼다. 하지만 아무런 반응조차 없었다. 차마 고시원 안이라 크게 소리를 칠 수가 없어서 똑같은 방식으로 두세번 더 했다. 하지만 소식이 없었다. 결국 고시원 주인을 불러 마스터키를 요구했고 고시원 주인은 탐탁치 않다는 듯이 자신의 손으로 자물쇠를 열었다. 현일은 곤히 잠들어 있었다. 고시원 주인은 내가 온 소식을 전하려 했는지 누워있는 현일의 손을 잡아다 끌었다. 얼마나 세게 잡아끌었으면 현일은 침대 위에서 굴러떨어졌다. 하지만 현일은 도통 깨어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현일의 뺨을 두들기면서 현일의 이름을 조용히 불렀지만 아무 대답이 없었다. 많이 피곤하면 누가 들쳐가도 모른다고 했으니 경과를 지켜볼 셈으로 현일의 방 책상 앞에 앉았다. 하지만 고시원 주인은 기겁하면서 비명을 질렀다. 그러면서 옆에 있던 방문이 하나둘씩 열리면서 쌍욕을 내뱉으면서 등장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나와 현일을 번갈아 보면서 눈을 부라렸을 뿐이었다. 그러더니 살짝 불안에 떨던 한 여자가 휴대전화에 번호를 눌러 전화를 하기 시작했다. 번호판을 누르는 시간이 생각보다 너무 빨라서 경찰이나 소방서에 눌렀을 가능성이 높아 보였다. 현일은 들것에 의해 이동됐다.
  며칠 뒤, 방안은 나 혼자 앉아있었다. 뉴스에서는 자연사라는 보도와 함께 고시원의 입구를 대문짝만하게 내걸고 방송을 했다. 잠깐 문을 닫고 현일이 살던 공간을 살펴보려는데 웅성거리는 고시원 주민들 사이로 양복을 입은 한 남자가 난입해왔다. 그들은 어느 방송국의 이름이 들어간 신분증을 보이며, 나에게 어떤 일이 일어난 것인지 묻고 있었다. 수첩에는 그 말이 볼펜 움직이는 것과 비슷한 속도로 적혀가고 있었다. 방송국 직원이라고 한 사람들이 돌아가고 난 뒤, 그의 짐들을 대신 정리해주게 돼버려서 회사에 전화해 사정을 이야기했다. 달력은 한 달 전에서 멈춰 있었다. 그리고 '생포세대로 살겠습니다.'라는 그 짧은 문구가 남아있었다. 유언에 가까운 말 한마디였으리라 의심치 않게 추측해볼 수 있었다.
그다음 날, 무궁화 꽃잎을 3개 단 중후한 경찰이 찾아왔다. 그는 내게 고개를 살짝 숙였다. 친족으로 착각한 모양이었다.
“이런 일이 일어나게 돼서 정말 안타깝습니다. 제가 옛날에 고시원에서 경찰공무원 준비를 한 자녀가 있어서 어떤 심정이실지 잘 압니다. 사정을 말하자면, 죽은 사람의 유족을 파악할 만한 물건이 휴대폰뿐인데 하필이면 메모리가 고장이 나서 말이죠. 복구 담당에게 문의해놨지만, 관례상 고인 분의 노트북 컴퓨터도 살펴봐야 하거든요. 부탁합니다.”
경찰은 현일의 짐들을 담아둔 상자에 눈이 갔다. 나는 켕길 게 없으니 흔쾌히 경찰에게 말없이 고개를 끄덕여줬다. 경찰은 노트북을 꺼내 관련이 있어 보이는 글이나 사진 같은 정보들을 찾아보고 있었다. 나는 그저 달력에 쓰인 문구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경찰은 무엇인가를 찾은 듯이 바쁘게 손을 움직이더니 이내 조사가 끝났음을 전하면서 감사의 뜻을 내게 전하고 고시원 밖으로 사라졌다. 경찰이 노트북 전원 꺼두지 않아 호기심에 화면을 바라본 후 나는 처음으로 현일이 초등학생 때부터 일기를 써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나는 모든 내용을 읽고 지워버렸다. 그의 부모님이 곧 알게 될 것이란 것을 어느 정도는 추측했지만, 본질적인 그의 모습을 경찰 쪽에서 있는 그대로 보여주진 않으리라 판단했다. 단지 현일이 부모님의 귀한 아들들로 남기만을 바랐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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